w. 유발 하라리

 

 

  모든 업그레이드가 처음에는 치료를 이유로 정당화된다. 유전공학 또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와 관련한 실험을 하는 전문가들을 찾아가 왜 그런 연구를 하는지 물어보라. 십중팔구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유전공학의 도움을 받아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또는 “우리가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할 수 있다면 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날리 없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데 성공하면 과연 그 기술을 조현병 치료에만 쓸까? 혹시라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뇌와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몰라도 인간 심리와 사회에 대해서는 뭘 모르는 것이다. 획기적인 기술이 일단 생기면 그 기술을 치료 목적에만 한정하고 업그레이드 용도를 전면 금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역사가 우리의 기술, 정치, 사회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 두려움, 꿈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조상들의 무덤에서 과거의 차가운 손이 쑥 올라와 우리 목을 틀어쥐고 우리의 시선을 단 하나의 미래로 향하게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 손아귀의 힘을 느끼고, 그래서 그것을 존재의 당연하고 불가피한 일부로 여긴다. 따라서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 다른 미래를 상상하려는 시도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역사 공부의 목표는 과거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조상들이 상상할 수 없었거나 우리가 상상하기를 원치 않았던 가능성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를 지금 여기로 이끈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생각과 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깨닫고, 다른 생각과 다른 꿈을 품을 수 있다. 역사 공부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알려주지 않지만, 적어도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제공한다.
  세계를 바꾸려는 운동들은 대개 역사 다시 쓰기에서 시작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 노동자의 총파업, 자기 몸에 대한 여성들의 권리, 억압받는 소수자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에 당신이 찬성하든, 안하든, 이러한 운동의 첫 단계는 역사 다시 말하기이다. 새로운 역사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운명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지금과 달랐던 때도 있었다.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이 우리가 오늘날 아는 부당한 세계를 창조했을 뿐이다. 현명하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세계를 바꿀 수 있고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역사를 말하고, 페미니스트가 가부장제 사회의 형성 과정을 공부하고, 미국 흑인들이 노예무역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목표는 과거를 영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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